‘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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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73회 작성일 21-10-25 13:19본문
최우수상 ‘우여곡절, 그의 새 아파트 생존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22 08:27:54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네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인 서관수씨의 ‘우여곡절, 그의 새 아파트 생존기’다.
우여곡절, 그의 새 아파트 생존기
서관수
이리저리 한참을 헤맸지만 도무지 입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낭패였다. 설상가상 빗방울마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났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아내에게 전화했다.
"응, 나 지금 아파트 앞인 것 같은데 입구를 못 찾겠어."
"잠깐만 있어봐."
전화기 너머로 아내의 목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저만치 위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외치는 모양이었다.
"지금 거기서 왼쪽으로 돌아서!"
'전화기로 잘만 들리는데 웬 고함이래?' 헛웃음을 머금은 채, 그는 아내의 지시대로 왼쪽으로 돌아섰다. 아차, 돌아서는 순간, 튀어나온 벽체에 이마가 부딪쳤다. 어이쿠!
"아니, 왼쪽이라니깐 왜 오른쪽으로 가고 그래!"
그는 분명히 왼쪽으로 갔었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말인가. 방향을 거꾸로 일러줘 놓고선... 이마의 아픔은 둘째 치고, 아내가 야속했다. 지금껏 시각장애인 남편과 같이 살면서도, 방향을 말한다는 게, 기껏 자신을 기준으로 일러주다니. 그렇다면 아내의 왼쪽은 그의 오른쪽. 그제야 방향을 바꿔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렇게 아내의 리모컨을 따르고서야, 출입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휴!
그는 얼마 전 이사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이사는 또 다른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한 이벤트다. 새 집에 적응하는 데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택시 안에서 몇 번이나 하차 위치를 일러주었건만, 정작 기사는 건성으로 들었던지, 대충 내려준 모양이었다. 분명 가로등이 나오고 현관 출입구가 나타나야 되는데, 낯선 벽체가 나타났으니 헤맬 수밖에. 아내의 엉터리 안내와 택시 기사의 무관심을 생각하니, 이마의 상처가 더욱 욱신거리는 듯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도 그는 아파트 앞을 헤매고 있었는데, 분명히 거기쯤 있어야 할 볼라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그의 보행 노선은 늘 한결같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와, 계단과 평행하게 방향을 잡고 이동한다. 얼마쯤 가면 볼라드가 나타나고 이어서 가로등과 화단이 나타나면 직진해서 입구를 찾는다. 계단과 볼라드 그리고 가로등이 이정표인 셈이다. 그런데 그날 볼라드가 돌연 사라진 것이다. 보행의 중요한 단서인 볼라드가 사라지는 바람에, 방향을 잃어버려 한참을 헤매야만 했다. 겨우겨우 도움을 받고서야 입구를 찾았다. '도대체 볼라드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범인은 관리실이었다. 관리실에서 볼라드를 옮긴 것이었다. 비록 넘어지거나 몸이 직접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매일같이 흰지팡이로 볼라드를 툭툭 치면서 다니는 그를 지켜보았단다. 금방이라도 무릎이 부딪칠 듯, 아슬아슬 지나다니는 걸 보고선, 위험해 보여 옮겼단다. 그렇지만 위험해 보였던 그 장애물이, 그에게는 오히려 꼭 필요한 랜드마크였다. 그는 관리실에 전화를 했고, 먼저 배려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고 나서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자 관리실 쪽에서 미처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그도 괜찮다 화답하며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는데,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층 좁혀지는 훈훈한 대화였다. 낯설기만 했던 새 아파트가 한결 정겨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가 생활 속에서 겪는 당황스러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움을 준다는 게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다. 갑자기 팔을 끌어당긴다든지, 무작정 흰지팡이를 잡아당기는 경우, 매우 불쾌하다. 특히 방향을 거꾸로 알려주는 경우에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시곗바늘 방향을 일러주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도움을 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래도 일방적인 도움이나 배려는 불편한 친절에 불과하다. 반드시 당사자에게 의사를 먼저 확인한 뒤, 안내를 하거나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그에게 또 다른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최근의 일이다. 그는 17층에 사는데, 31층 건물이라 엘리베이터에는 버튼이 많다. 버튼에는 점자가 표기되어 있지만, 17층을 찾자면 조금은 헤매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로 뜻밖의 불편함이 생겼다. 항균필름 때문에, 점자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 갓 교체한 필름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서, 점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필름이 바뀔 때마다, 1층과 17층 버튼에 조각을 새긴다. 손톱 끝으로 점자가 도드라질 때까지 긁어놓는 것이다. 그나마 1층은 여러 사람이 누르다 보니 금세 점자가 도드라지는 편이지만, 17층은 정성스레 조각을 해야만 한다. 그가 점자를 새기는 중에도 주민들이 타고 내린다. 무관심한 사람도 있는 반면, 몇몇 사람들은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상황에 대해 새삼 이해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항균필름이 낡아질수록 안심이 된다. 버튼의 점자들이 오롯이 또렷해지니까.
엘리베이터를 생각하니, 아찔한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지금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음성이 나오므로 그나마 안전한 편이다. 반면 전에 살던 아파트는 버튼에 점자는 있었지만 음성안내가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1층으로 내려간다는 게 3층에 잘못 내린 적이 있다. 누군가 3층에서 버튼을 눌러놓고는 타지 않은 것이다. 하필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당연히 1층이라고 생각했고, 무의식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1층은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였기에, 그로서는 경사로만을 염두에 둔 채 거침없이 발을 내디딘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3층이었다. 아차 순간에, 계단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다. 이후 그는 관리실에 엘리베이터 음성 설치를 요구했으나,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안전사고에 대한 의식도 없을뿐더러, 장애인에 대한 배려 아니 사람의 생명에 대한 개념조차 전혀 없었다. 10여 년 전, 장애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다.
아무튼,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라도, 이사 이후 한동안은, 실내외에서 소소한 충돌과 낯섦에 의한 혼란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이 아파트가, 고향집처럼 정답게 느껴진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버튼을 더듬노라니, 한 군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항균필름에 구멍이 뚫린 채, 버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바로 그가 사는 17층이었다. 누군가 버튼 크기만큼 필름을 오려낸 것이었다. 점자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누구일까? 가족들의 얼굴이 퍼뜩 스쳤다. 그렇지만 가족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외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세심한 배려에 함께 감탄했다. 절단면은 비뚤비뚤하고 거칠었다. 그럼에도 뚫린 구멍에서는, 사람 냄새가 솔솔 피어났다. 누구일까? 주인공은 금세 밝혀졌다. 며칠 후, 13층 아저씨가 인사를 건넸다.
"이제 점자 잘 만져지지요."
그가 버튼을 더듬는 걸 평소 지켜보다가, 도움이 될까 해서 오려냈단다.
"감사합니다! 최고입니다!"
역시 소통에는 당사자와의 일상적인 접촉만 한 것이 없었다. 그의 엄지척 인사에, 13층 아저씨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엘리베이터 안이 환해지고 있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관심과 배려의 착한 바이러스는, 엄청난 전파력으로 세상을 향해 퍼져나간다는 사실이었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뿔싸, 새 항균필름이 씌워져 있었다. 점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17층이 어디 있더라.' 순간적으로 낭패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가만가만 버튼을 더듬노라니, 한 군데에 구멍이 뚫려있는 게 아닌가. 역시나 17층이었다. 그런데 이번 것은 잘라낸 면이 상당히 매끈하고 깔끔했다. 필름이 팽팽한 걸로 보아, 금세 바꾼 듯했다. 그렇다면 이건 13층 아저씨가 아니라, 관리실에서 설치하면서 미리 구멍을 낸 듯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팽팽한 필름 사이로, 유독 17층만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작은 구멍은, 이제 세상과 통하는 커다란 창이 되었다. 오렌지빛 버튼이,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그것은 시각장애인과 주민 그리고 관리실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지사지 소통의 아이콘이었다. 순간 아파트 전체로 퍼져나가는 행복 바이러스는, 지긋지긋한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도 어느새 저만치 몰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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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네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인 서관수씨의 ‘우여곡절, 그의 새 아파트 생존기’다.
우여곡절, 그의 새 아파트 생존기
서관수
이리저리 한참을 헤맸지만 도무지 입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낭패였다. 설상가상 빗방울마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났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아내에게 전화했다.
"응, 나 지금 아파트 앞인 것 같은데 입구를 못 찾겠어."
"잠깐만 있어봐."
전화기 너머로 아내의 목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저만치 위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외치는 모양이었다.
"지금 거기서 왼쪽으로 돌아서!"
'전화기로 잘만 들리는데 웬 고함이래?' 헛웃음을 머금은 채, 그는 아내의 지시대로 왼쪽으로 돌아섰다. 아차, 돌아서는 순간, 튀어나온 벽체에 이마가 부딪쳤다. 어이쿠!
"아니, 왼쪽이라니깐 왜 오른쪽으로 가고 그래!"
그는 분명히 왼쪽으로 갔었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말인가. 방향을 거꾸로 일러줘 놓고선... 이마의 아픔은 둘째 치고, 아내가 야속했다. 지금껏 시각장애인 남편과 같이 살면서도, 방향을 말한다는 게, 기껏 자신을 기준으로 일러주다니. 그렇다면 아내의 왼쪽은 그의 오른쪽. 그제야 방향을 바꿔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렇게 아내의 리모컨을 따르고서야, 출입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휴!
그는 얼마 전 이사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이사는 또 다른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한 이벤트다. 새 집에 적응하는 데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택시 안에서 몇 번이나 하차 위치를 일러주었건만, 정작 기사는 건성으로 들었던지, 대충 내려준 모양이었다. 분명 가로등이 나오고 현관 출입구가 나타나야 되는데, 낯선 벽체가 나타났으니 헤맬 수밖에. 아내의 엉터리 안내와 택시 기사의 무관심을 생각하니, 이마의 상처가 더욱 욱신거리는 듯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도 그는 아파트 앞을 헤매고 있었는데, 분명히 거기쯤 있어야 할 볼라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그의 보행 노선은 늘 한결같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와, 계단과 평행하게 방향을 잡고 이동한다. 얼마쯤 가면 볼라드가 나타나고 이어서 가로등과 화단이 나타나면 직진해서 입구를 찾는다. 계단과 볼라드 그리고 가로등이 이정표인 셈이다. 그런데 그날 볼라드가 돌연 사라진 것이다. 보행의 중요한 단서인 볼라드가 사라지는 바람에, 방향을 잃어버려 한참을 헤매야만 했다. 겨우겨우 도움을 받고서야 입구를 찾았다. '도대체 볼라드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범인은 관리실이었다. 관리실에서 볼라드를 옮긴 것이었다. 비록 넘어지거나 몸이 직접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매일같이 흰지팡이로 볼라드를 툭툭 치면서 다니는 그를 지켜보았단다. 금방이라도 무릎이 부딪칠 듯, 아슬아슬 지나다니는 걸 보고선, 위험해 보여 옮겼단다. 그렇지만 위험해 보였던 그 장애물이, 그에게는 오히려 꼭 필요한 랜드마크였다. 그는 관리실에 전화를 했고, 먼저 배려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고 나서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자 관리실 쪽에서 미처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그도 괜찮다 화답하며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는데,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층 좁혀지는 훈훈한 대화였다. 낯설기만 했던 새 아파트가 한결 정겨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가 생활 속에서 겪는 당황스러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움을 준다는 게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다. 갑자기 팔을 끌어당긴다든지, 무작정 흰지팡이를 잡아당기는 경우, 매우 불쾌하다. 특히 방향을 거꾸로 알려주는 경우에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시곗바늘 방향을 일러주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도움을 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래도 일방적인 도움이나 배려는 불편한 친절에 불과하다. 반드시 당사자에게 의사를 먼저 확인한 뒤, 안내를 하거나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그에게 또 다른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최근의 일이다. 그는 17층에 사는데, 31층 건물이라 엘리베이터에는 버튼이 많다. 버튼에는 점자가 표기되어 있지만, 17층을 찾자면 조금은 헤매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로 뜻밖의 불편함이 생겼다. 항균필름 때문에, 점자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 갓 교체한 필름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서, 점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필름이 바뀔 때마다, 1층과 17층 버튼에 조각을 새긴다. 손톱 끝으로 점자가 도드라질 때까지 긁어놓는 것이다. 그나마 1층은 여러 사람이 누르다 보니 금세 점자가 도드라지는 편이지만, 17층은 정성스레 조각을 해야만 한다. 그가 점자를 새기는 중에도 주민들이 타고 내린다. 무관심한 사람도 있는 반면, 몇몇 사람들은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상황에 대해 새삼 이해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항균필름이 낡아질수록 안심이 된다. 버튼의 점자들이 오롯이 또렷해지니까.
엘리베이터를 생각하니, 아찔한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지금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음성이 나오므로 그나마 안전한 편이다. 반면 전에 살던 아파트는 버튼에 점자는 있었지만 음성안내가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1층으로 내려간다는 게 3층에 잘못 내린 적이 있다. 누군가 3층에서 버튼을 눌러놓고는 타지 않은 것이다. 하필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당연히 1층이라고 생각했고, 무의식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1층은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였기에, 그로서는 경사로만을 염두에 둔 채 거침없이 발을 내디딘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3층이었다. 아차 순간에, 계단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다. 이후 그는 관리실에 엘리베이터 음성 설치를 요구했으나,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안전사고에 대한 의식도 없을뿐더러, 장애인에 대한 배려 아니 사람의 생명에 대한 개념조차 전혀 없었다. 10여 년 전, 장애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다.
아무튼,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라도, 이사 이후 한동안은, 실내외에서 소소한 충돌과 낯섦에 의한 혼란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이 아파트가, 고향집처럼 정답게 느껴진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버튼을 더듬노라니, 한 군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항균필름에 구멍이 뚫린 채, 버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바로 그가 사는 17층이었다. 누군가 버튼 크기만큼 필름을 오려낸 것이었다. 점자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누구일까? 가족들의 얼굴이 퍼뜩 스쳤다. 그렇지만 가족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외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세심한 배려에 함께 감탄했다. 절단면은 비뚤비뚤하고 거칠었다. 그럼에도 뚫린 구멍에서는, 사람 냄새가 솔솔 피어났다. 누구일까? 주인공은 금세 밝혀졌다. 며칠 후, 13층 아저씨가 인사를 건넸다.
"이제 점자 잘 만져지지요."
그가 버튼을 더듬는 걸 평소 지켜보다가, 도움이 될까 해서 오려냈단다.
"감사합니다! 최고입니다!"
역시 소통에는 당사자와의 일상적인 접촉만 한 것이 없었다. 그의 엄지척 인사에, 13층 아저씨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엘리베이터 안이 환해지고 있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관심과 배려의 착한 바이러스는, 엄청난 전파력으로 세상을 향해 퍼져나간다는 사실이었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뿔싸, 새 항균필름이 씌워져 있었다. 점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17층이 어디 있더라.' 순간적으로 낭패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가만가만 버튼을 더듬노라니, 한 군데에 구멍이 뚫려있는 게 아닌가. 역시나 17층이었다. 그런데 이번 것은 잘라낸 면이 상당히 매끈하고 깔끔했다. 필름이 팽팽한 걸로 보아, 금세 바꾼 듯했다. 그렇다면 이건 13층 아저씨가 아니라, 관리실에서 설치하면서 미리 구멍을 낸 듯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팽팽한 필름 사이로, 유독 17층만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작은 구멍은, 이제 세상과 통하는 커다란 창이 되었다. 오렌지빛 버튼이,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그것은 시각장애인과 주민 그리고 관리실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지사지 소통의 아이콘이었다. 순간 아파트 전체로 퍼져나가는 행복 바이러스는, 지긋지긋한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도 어느새 저만치 몰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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