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수상작 소개-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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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05회 작성일 21-10-25 11:13본문
최우수상 ‘I am still going my way’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21 10: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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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세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인 박도윤씨의 ‘I am still going my way’다.
I am still going my way
박도윤
I am still going my way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길이 어떤 길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길이 오르막이든 자갈길이든 나는 계속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며 그 길가에 펼쳐질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며 또 배우고 함께 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The best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나에게 있어 지난 2009년의 여름은 그 둘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특별한 여름, 잊지 못하는 3주였다.
어려서부터 어학공부에 흥미를 느꼈다. 2009년 5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 라는 결심과 함께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8월 11일, 드디어 필리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나투어에서 주관하는 7개월 어학연수 코스였고 과정을 수료하면 필리핀 현지 투어가이드로의 취업이 보장되는 패키지였다. 11명의 최종명단에 선발된 나는 다음날 아침, 앞으로 7개월간 동고동락하게 될 크루(crew: 선원, 동료)와 인사를 나누며 필리핀 수빅에서의 기분 좋은 첫 날을 시작했다.
소위 말해서 죽이 너무 잘 맞았다. 비슷한 나이 또래에 같은 목적을 가진 11명은 금세 친해졌고, 의도치 않게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 타이트한 주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숙소 앞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간 누려보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그야말로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바로 그 날 역시, 그렇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The worst
2009년 8월 23일 토요일, 유난히도 날씨가 좋던 그날 아침, 나는 꽉 찬 하루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오전공부를 끝내고 저녁에 있을 피크닉을 위해 마트로 향했다. 인원수에 맞게 먹거리를 준비한 우린, 해가 지기 직전부터 3주 만에 먹어보는 그리운 한국음식과 함께 사뭇 때 이른 타향에서의 우정다짐을 이어나갔다.
피크닉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난 이제 오늘의 메인 이벤트였던 필리핀 현지인 친구와의 미팅을 위해 숙소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오후 6시면 문을 닫던 수영장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평소 때는 그렇게 (물에) 들어가자고 해도 거부하던 크루들이 그날은 오히려 나에게 수영을 가르쳐달라며 나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약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마침 날도 무더웠던 터라, 나는 잠깐만 수영을 하기로 하고 물에 들어갔다.
수영선수 출신인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다이빙을 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잠시 다른 생각을 했었을까? 평소 때와는 달리, 나는 수면 위로 나오는 타이밍을 약 2초 정도 놓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수영장 바닥에 부딪히면서 고개가 심하게 뒤로 젖혀졌고 순간적으로 코에서 피가 나왔다. 목뼈가 부러지면서 그 뼛조각들이 중추신경을 끊어버린 것이다. 앰뷸런스가 오고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그 이후, 더 이상 나의 다리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척수손상은 어느 부위를 다쳤으며 얼마나 빨리 수술을 하느냐가 회복의 당락을 좌우한다. 하지만 나는 꽤나 위험한 부위를 해외에서 다쳤기 때문에 사고 이후 수술하는 데까지 9일이 걸렸다.
귀국 후 병원으로 이동하는 앰뷸런스 안에서의 1시간, 3주 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을 애써 자연스레 바라보는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으셨다.
The Frustration and Efforts
'경수 5,6번 손상에 의한 불완전 사지마비.' 수술 후 내가 받은 진단명이다. 그날 이후 휠체어는 나의 다리가 되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사고 이전에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 잘 불렀다. 하지만 신경손상으로 복압이 나오지 않던 터라 더 이상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한창 재활 중이던 어느 평일의 한 물리치료실, 평소 내가 잘 부르던 그 노래가 치료시간 내내 무한반복으로 플레이 될 때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그 30분의 눈물은 지금도 생생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후로 한 3번 정도 더 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서서히 병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필리핀으로 돌아 가리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운동에 임했다. 운동시간이 끝나고 잠시 올라갔던 옥상공원에서 쬐었던 따스한 볕은 그러한 나의 의지를 더욱 부추겼다. 하지만 필리핀으로의 귀환은 끝끝내 이뤄지지 않았고. 2013년 3월, 3년간의 기나긴 병원 생활을 끝으로 나는 필리핀 비행기 대신 집으로 돌아오는 장애인콜택시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내 모습만 빼고, 그리고 그 날 이후 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진짜 재활이 시작되었다.
The challenges
지역사회복귀 코디네이터, 일상생활코치, 사회복지사, 동료상담가, 장애인식개선교육강사, 한국장애인 국제예술단 수석단원…...
지난 5년간 내가 했던 혹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직함들이다.
저절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항상 고민하고 찾아다닌 그야말로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특히나 사회복지사 1년 과정은 욕창으로 인해 거의 침대에 누워서 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감각이 없기 때문에 마취 없이 환부의 오염된 부위를 칼로 도려내면서도 미동도 없이 그저 그날 저녁의 과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을까? 통증을 못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헷갈린다.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무튼.
장애인식개선교육강사와 장애인 국제예술단 단원 역시 한 번의 미끄러짐 이후 재도전 끝에 얻은 귀중한 결실이었다. 그렇게 곧은 길, 울퉁불퉁한 길 가리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2021년 7월의 지금, 나는 나의 이름과 증명사진이 박힌 세 개의 명함을 가지고 바쁘게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I am still going my way
어느 영화 시상식에서 어느 배우가 한 수상소감이 문득 기억이 난다. 본인은 그것이 시나리오가 좋든 싫든 배역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해왔다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오더라고. 그 이유를 묻자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 여러분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저 그 일을 열심히, 묵묵히 하시라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어제랑 똑같이 한 그 일이 오늘은 특별하게 비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매트 위에서 스스로 엎드리지도 못하고 팔꿈치를 다리 삼아 힘겹게 기어가며 늘 남의 도움만을 받던 그 척수손상 '환자'는 어느새 자기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활동가'이자 '조력자'가 되었다. 30년이 넘게 시설에 거주하다가 자립을 실현한 한 뇌병변장애인이 그 되지 않는 의사소통으로, 그 되지 않는 손동작으로 내 손을 잡으며 힘겹게 고맙다고 이야기했을 때의 그 감동, 장애인식개선교육이 끝난 후 받았던 한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의 수줍은 볼뽀뽀, 이러한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이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던 나의 노력들에 대한 작은 보상이며, 다시금 또 나의 휠체어를 어디론가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길이 어떤 길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길이 오르막이든 자갈길이든 나는 계속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며 그 길가에 펼쳐질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며 또 배우고 함께 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2021년 여름, 곧 교체해야 할 삐거덕거리는 휠체어 위에서
박 도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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