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②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08회 작성일 21-10-25 10:53본문
최우수상 ‘효도과목 전교 1등 손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19 08:40:16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두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인 손필선씨의 ‘효도과목 전교 1등 손자’다.
효도과목 전교 1등 손자
손필선
며칠 뒤면 아버지 기제사 날이다.
이맘때가 되면 괜히 아버지가 더 그리워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대구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의사 표현이 잘 안되었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물건을 집어던지는 건 기본이고, 한번 화가 나면 진정되기가 어려웠다.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짤막한 의사전달은 좀 되었지만, 분위기나 상황 파악은 안 되고, 눈치는 하나도 없고,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어렵기에 가끔 친척 모임에 가도 난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거기에 응답하다 보면 지치기까지 한다. 결국 엄마인 내 입에서조차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온종일 웃을 일 한 번 없는 환경에 거기다 둘째 육아 스트레스까지. 그래서 난 방학 때 한 번씩 친정에 큰애를 보냈었다.
유일하게 상대해 주고 마냥 다 받아주시는 할아버지를 우리 아들은 무척이나 좋아하고 잘 따랐다. 아버지는 노환으로 청력이 많이 약해지셔서 아들이 무슨 말을 해도 "그래, 우리 손자 잘한다."라고 하실 뿐이다. 처음에는 아들도 신경질 부리고 떼도 쓰고 울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으시고 다 받아주셨던 모양이다.
서로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다 보니 주로 맛있는 것이나 먹으러 다니고, 집 근처를 데리고 다니셨다. 친정아버지도 적적하시던 찰나, 같이 밥도 먹고 손자와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무료함을 달래면서 서로의 친구가 되었다. 잘나고 똑똑한 손자나 친아들은 시간이 없어서 아무도 당신이랑 밥도 못 먹고 놀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 상황이 도리어 우리 아들을 효도하는 손자로 만들어 주었다. 여든이라는 연세에 덩치 큰 손자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항상 즐거운 표정으로 친구 분을 만나면, 효도과목에는 1등 손자라고 자랑도 많이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정정하신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고, 길지 않은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계실 때에 병간호 차 아들을 잠깐씩 데리고 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우리 아들은 "할아버지, 밥 바, 놀자"하면서 떼를 부렸다. 누워계신 아버지 상황은 안중에도 없고 할아버지 많이 아프시다는 말에도 그저 눈만 끔뻑끔뻑할 뿐이었다.
돌아가시기 전날, 마지막 인사드리러 갔을 때, 아버지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더니 초점 없이 흐린 눈으로 막내 손자와 막내딸인 나를 눈물 어린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셨다. 그리곤 내 손과 아들 손을 꼭 잡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아들에게 다음 생에도 꼭 내 손자 하자고, 그리고 딸인 나에게도 모든 아픔을 다 가지고 가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만 울라고 말씀하시곤 편안히 영면에 드셨다.
평소 막내딸인 나를 제일 예뻐하시고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주셨는데, 곱게 키운 딸이 뜻하지 않게 장애 자식을 키우면서 받는 마음의 고통과 주위의 시선과 안타까움에 살아생전 아버지는 늘 나를 걱정하시고 안쓰러워하시면서 우리 아들만 괜찮으면 아무 걱정이 없단 말씀을 되풀이하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남아있는 딸이 더 눈에 밟히고 아련하셨을 것이다. 앞으로의 기나긴 여정에 아버지가 더 함께할 수 없음에 떠나시는 발걸음이 힘겨우셨을 것이다.
빈소가 차려지고 조문객들이 왔다 갔다 하는 장례식장에서도 아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위아래 방방 뛰기를 수시로 하는 바람에 아들을 방에 가두기도 했다. 이런 문제행동으로 인해 아들의 존재를 부끄러워 드러내기를 항상 주저했던 나와는 반대로, 살아생전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뭐가 부끄럽냐고 장애인은 사람도 아니냐며, 그런 편견을 바꾸어야 한다며, 주위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 갖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다들 자식 키우고 사는 사람들이니 이해할 거라며, 나를 다독여주시고 나의 편이 되어 주셨다. 아들은 아들만의 좀 더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을 뿐, 절대로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아들이 남과 다르지 않으니 아들의 세계를 인정해 주라고 하셨다.
슬픈 마음을 가다듬고 입관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향하는 화장터. 아들은 한동안 영문도 모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저도 따라 울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했다. 장지에 편안히 아버지를 모셔두고, 마지막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한마디씩 남기던 중, 그때 갑자기 아들은 손을 번쩍 들어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할아버지 그동안 나랑 많이 놀았다. 맛있는 거 많이 사줬다. 그리고 아프지 말고. 안녕... 감사합니다."
순간 엄숙했던 분위기는 잠시 멈춤, 아들을 바라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순간으로 변해버렸다. 그동안 지금까지 이렇게 아들이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고 감정 담긴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아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의미를 알고 있었던 거다.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서로 의사소통은 잘 안되었지만,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오롯이 아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전달되었나 보다.
앞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가신 할아버지가 두 번 다시 아들에게 맛있는 과자도, 재미있는 놀이도 해 줄 수 없다는 걸 마음 속 언어로 소통하고 있었나 보다. 누구 하나 아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한 사람은 없었다. 할아버지가 그동안 보여줬던 진심 어린 깊은 사랑에 (비록 어눌하고 서툴지만) 그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그런 표현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아들이었지만, 감사하단 인사를 그렇게 꼭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동안 베풀어주신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스스로 손까지 들어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맹세와 같은 인사로 화답했다. 본인의 세계를 유일하게 인정해 주신 할아버지였기에 그동안 베풀어주신 사랑과 온기에 대해 기적 같은 변화로 말이다…. 조문객 속에서 펄쩍펄쩍 뛰던 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누구보다도 의젓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이 순간을 모든 사람들이 다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런 반전의 모습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이다. 순간 그때,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랐다.
"딸아, 더 이상 울지 말고 슬퍼하지 마라. 내가 너 아픔 다 가지고 가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아들은 가끔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얘기하면서 나날이 표현력도 좋아지고,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듯 할아버지와의 놀이 장소도 얘기하기도 했다.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돌발행동도 많이 줄어들었고 감정 조절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물론 돌아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기적을 일으키신 건 아니겠지만, 난 분명 아버지께서 주신 작은 희망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딸이 더 울지 않도록. 더는 힘들어하지 않도록.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먹고 자라난 작은 변화의 시작.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은 채,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던 우리 아들을 아버지는 보듬어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함께 마음의 진정한 대화를 나누셨다. 그 진정한 무언의 대화가 우리 아들을 변화의 시작으로 이끌어 주신 것 같다. 큰 덩치에 비해 여전히 언어나 지적 능력은 한없이 떨어지지만 반찬투정 하나 없이 밥 잘 먹는 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다.
최근 들어서는 밀알에서 주관하는 발달장애 미술교육생으로도 선발되었고, 심지어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발달장애 미술교육생으로도 발탁되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로지 엄마이기에 느낄 수 있는 변화이지만, 여전히 아들은 성장 중이다. 그 길에 아버지가 아들 곁에 함께 하시며 묵묵히 지켜주시는 거 같아서 아버지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외롭지 않게 말동무도 해 주시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눈물짓는 약한 엄마가 아니다. 아들의 힘찬 발걸음에 희망을 보았고, 변화를 보았고, 가능성을 보았다. 분명 오늘보다는 내일 더 발전할 것이고,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 성장해 갈 것이다. 그리고 대학진학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아들!!! 그 목표를 향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자고..
그리고 아버지께 말씀드릴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들이 부끄럽지 않다는 말씀. 엄마 자격도 없는 나에게 큰 가르침과 사랑을 주신 아버지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
-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두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인 손필선씨의 ‘효도과목 전교 1등 손자’다.
효도과목 전교 1등 손자
손필선
며칠 뒤면 아버지 기제사 날이다.
이맘때가 되면 괜히 아버지가 더 그리워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대구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의사 표현이 잘 안되었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물건을 집어던지는 건 기본이고, 한번 화가 나면 진정되기가 어려웠다.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짤막한 의사전달은 좀 되었지만, 분위기나 상황 파악은 안 되고, 눈치는 하나도 없고,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어렵기에 가끔 친척 모임에 가도 난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거기에 응답하다 보면 지치기까지 한다. 결국 엄마인 내 입에서조차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온종일 웃을 일 한 번 없는 환경에 거기다 둘째 육아 스트레스까지. 그래서 난 방학 때 한 번씩 친정에 큰애를 보냈었다.
유일하게 상대해 주고 마냥 다 받아주시는 할아버지를 우리 아들은 무척이나 좋아하고 잘 따랐다. 아버지는 노환으로 청력이 많이 약해지셔서 아들이 무슨 말을 해도 "그래, 우리 손자 잘한다."라고 하실 뿐이다. 처음에는 아들도 신경질 부리고 떼도 쓰고 울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으시고 다 받아주셨던 모양이다.
서로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다 보니 주로 맛있는 것이나 먹으러 다니고, 집 근처를 데리고 다니셨다. 친정아버지도 적적하시던 찰나, 같이 밥도 먹고 손자와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무료함을 달래면서 서로의 친구가 되었다. 잘나고 똑똑한 손자나 친아들은 시간이 없어서 아무도 당신이랑 밥도 못 먹고 놀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 상황이 도리어 우리 아들을 효도하는 손자로 만들어 주었다. 여든이라는 연세에 덩치 큰 손자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항상 즐거운 표정으로 친구 분을 만나면, 효도과목에는 1등 손자라고 자랑도 많이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정정하신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고, 길지 않은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계실 때에 병간호 차 아들을 잠깐씩 데리고 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우리 아들은 "할아버지, 밥 바, 놀자"하면서 떼를 부렸다. 누워계신 아버지 상황은 안중에도 없고 할아버지 많이 아프시다는 말에도 그저 눈만 끔뻑끔뻑할 뿐이었다.
돌아가시기 전날, 마지막 인사드리러 갔을 때, 아버지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더니 초점 없이 흐린 눈으로 막내 손자와 막내딸인 나를 눈물 어린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셨다. 그리곤 내 손과 아들 손을 꼭 잡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아들에게 다음 생에도 꼭 내 손자 하자고, 그리고 딸인 나에게도 모든 아픔을 다 가지고 가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만 울라고 말씀하시곤 편안히 영면에 드셨다.
평소 막내딸인 나를 제일 예뻐하시고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주셨는데, 곱게 키운 딸이 뜻하지 않게 장애 자식을 키우면서 받는 마음의 고통과 주위의 시선과 안타까움에 살아생전 아버지는 늘 나를 걱정하시고 안쓰러워하시면서 우리 아들만 괜찮으면 아무 걱정이 없단 말씀을 되풀이하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남아있는 딸이 더 눈에 밟히고 아련하셨을 것이다. 앞으로의 기나긴 여정에 아버지가 더 함께할 수 없음에 떠나시는 발걸음이 힘겨우셨을 것이다.
빈소가 차려지고 조문객들이 왔다 갔다 하는 장례식장에서도 아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위아래 방방 뛰기를 수시로 하는 바람에 아들을 방에 가두기도 했다. 이런 문제행동으로 인해 아들의 존재를 부끄러워 드러내기를 항상 주저했던 나와는 반대로, 살아생전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뭐가 부끄럽냐고 장애인은 사람도 아니냐며, 그런 편견을 바꾸어야 한다며, 주위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 갖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다들 자식 키우고 사는 사람들이니 이해할 거라며, 나를 다독여주시고 나의 편이 되어 주셨다. 아들은 아들만의 좀 더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을 뿐, 절대로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아들이 남과 다르지 않으니 아들의 세계를 인정해 주라고 하셨다.
슬픈 마음을 가다듬고 입관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향하는 화장터. 아들은 한동안 영문도 모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저도 따라 울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했다. 장지에 편안히 아버지를 모셔두고, 마지막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한마디씩 남기던 중, 그때 갑자기 아들은 손을 번쩍 들어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할아버지 그동안 나랑 많이 놀았다. 맛있는 거 많이 사줬다. 그리고 아프지 말고. 안녕... 감사합니다."
순간 엄숙했던 분위기는 잠시 멈춤, 아들을 바라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순간으로 변해버렸다. 그동안 지금까지 이렇게 아들이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고 감정 담긴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아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의미를 알고 있었던 거다.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서로 의사소통은 잘 안되었지만,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오롯이 아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전달되었나 보다.
앞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가신 할아버지가 두 번 다시 아들에게 맛있는 과자도, 재미있는 놀이도 해 줄 수 없다는 걸 마음 속 언어로 소통하고 있었나 보다. 누구 하나 아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한 사람은 없었다. 할아버지가 그동안 보여줬던 진심 어린 깊은 사랑에 (비록 어눌하고 서툴지만) 그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그런 표현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아들이었지만, 감사하단 인사를 그렇게 꼭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동안 베풀어주신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스스로 손까지 들어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맹세와 같은 인사로 화답했다. 본인의 세계를 유일하게 인정해 주신 할아버지였기에 그동안 베풀어주신 사랑과 온기에 대해 기적 같은 변화로 말이다…. 조문객 속에서 펄쩍펄쩍 뛰던 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누구보다도 의젓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이 순간을 모든 사람들이 다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런 반전의 모습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이다. 순간 그때,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랐다.
"딸아, 더 이상 울지 말고 슬퍼하지 마라. 내가 너 아픔 다 가지고 가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아들은 가끔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얘기하면서 나날이 표현력도 좋아지고,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듯 할아버지와의 놀이 장소도 얘기하기도 했다.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돌발행동도 많이 줄어들었고 감정 조절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물론 돌아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기적을 일으키신 건 아니겠지만, 난 분명 아버지께서 주신 작은 희망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딸이 더 울지 않도록. 더는 힘들어하지 않도록.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먹고 자라난 작은 변화의 시작.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은 채,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던 우리 아들을 아버지는 보듬어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함께 마음의 진정한 대화를 나누셨다. 그 진정한 무언의 대화가 우리 아들을 변화의 시작으로 이끌어 주신 것 같다. 큰 덩치에 비해 여전히 언어나 지적 능력은 한없이 떨어지지만 반찬투정 하나 없이 밥 잘 먹는 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다.
최근 들어서는 밀알에서 주관하는 발달장애 미술교육생으로도 선발되었고, 심지어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발달장애 미술교육생으로도 발탁되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로지 엄마이기에 느낄 수 있는 변화이지만, 여전히 아들은 성장 중이다. 그 길에 아버지가 아들 곁에 함께 하시며 묵묵히 지켜주시는 거 같아서 아버지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외롭지 않게 말동무도 해 주시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눈물짓는 약한 엄마가 아니다. 아들의 힘찬 발걸음에 희망을 보았고, 변화를 보았고, 가능성을 보았다. 분명 오늘보다는 내일 더 발전할 것이고,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 성장해 갈 것이다. 그리고 대학진학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아들!!! 그 목표를 향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자고..
그리고 아버지께 말씀드릴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들이 부끄럽지 않다는 말씀. 엄마 자격도 없는 나에게 큰 가르침과 사랑을 주신 아버지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
-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
에이블뉴스 (ablenews@ablenews.co.kr)
출처: 에이블뉴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