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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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52회 작성일 21-10-25 10:49본문
보건복지부장관상 '성준이가 왜 그럴까?'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18 08:41:18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첫 번째는 보건복지부장관상 수상작인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다.
성준이가 왜 그럴까?
김효진
어느 휴일의 여름날이었다. 하루 전날 비가 와서 그랬는지 습도가 매우 높고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집에만 있기가 답답했고 에어컨 바람에 만성 비염이었던 나와 큰아들 성준이는 콧물과 기침에 고생이었다. 아이들 산책도 시킬 겸 장도 볼 겸 해서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려 했다. 밖을 막 나서려는데 큰 아들 성준이가 흐느끼며 서툴게 입을 열었다.
"시어시어...아냐...아냐.(싫어 싫어. 아니야 아니야.)"
성준이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 발화가 늦어져 아직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무언가 정말로 필요할 때만 입을 연다. 요즘 들어 밖을 나갈 때마다 칭얼거리고 떼를 쓰는 일이 잦았다. 밖이 너무 더우니까 나가기 싫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콧물과 기침에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반강제로 신발을 신겨 밖을 나갔다. 열 걸음 정도 걸었을까 성준이는 재빨리 내 앞으로 오더니 양팔을 크게 벌려 나에게 서툴게 말했다.
"아나 아나. (안아줘 안아줘)"
8살 치고는 큰 키에 무게가 있는 성준이를 안아주기에는 금속가공을 하며 무거운 쇳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을 반복하는 탓에 만성 허리 통증을 겪는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 돼! 오늘은 걸어가는 거야!"
"흐에에에엥. 흐아아앙."
그 말은 들은 성준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게 짜증이 났다. 이 습한 공기도 뜨거운 햇빛도 지금 이 상황들도 모든 게 싫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꾹 참고 아이의 손을 잡고 앞을 향해 걸었다. 성준이는 걸으면 걸을수록 더 크게 칭얼대며 울었다.
"자꾸 그러면 집에 가서 맴매할 거야!"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는지 성준이는 억지로 자기 입을 막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흐흐흐윽 흑"
그 우는소리가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이 기특한 부분도 있어 나도 더 이상 짜증을 내지 않고 조용히 걸었다. 동네 빵집에 들려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스텔라 빵을 사는 내내 성준이의 조용한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성준이도 나름에 불평불만을 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스읍! 그럼 안 돼!", "스읍! 조용!" 하며 화를 내었다. 아빠인 내가 그렇게 짜증 내고 화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준이는 나에게 다가와 팔을 벌려 또다시 말했다.
"아나 아나(안아줘. 안아줘)"
아이에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힘들었는지 계속 보채기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날씨가 더우니 힘들겠지. 우리 성준이는 몸은 커도 마음은 여전히 아기니까 떼를 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아……. 그래도 너무 힘들고 짜증 난다.' 나는 이해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가 해달라는 모든 걸 해줘서 버릇이 나빠졌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빠가 졌다."
나는 앞으로 안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 아이를 내 등 뒤로 업어 주었다. 나는 너무 덥고 힘든 나머지 길을 재촉해서 집으로 향했다. 5살 둘째 아이의 손을 잡고 앞서 걷던 아내도 더 이상 산책은 덥고 힘들었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동의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을 했다.
'집에 가서 성준이 이 녀석 혼을 좀 내야겠다. 아무리 장애가 있어도 자꾸 떼를 쓰네. 나쁜 습관 더 생기기 전에 버릇을 고쳐줘야겠어.'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나는 성준이부터 다그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성준이가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준이가 신발을 벗자 양쪽 양말 뒷부분이 빨개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성준이의 양말을 벗겼다. 양말을 벗기자 양쪽 뒤꿈치 부분에 물집이 생겨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고 엄지발가락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짧은 순간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왜 피가 나지? 전에는 별문제가 없었던 신발인데? 신발이 작아졌나? 아차! 신발 사준지가 오래됐구나!!!' 나는 재빨리 성준이가 신었던 신발을 성준이의 발에 대어 비교해보았다. 엄지발톱만큼이나 신발 크기가 작았다.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유난히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던 성준이가 몇 주 전부터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아진 신발 때문에 발이 아팠던 것이었다. 발이 아파서 계속 보챘던 성준이 마음도 모르고 계속 혼을 냈던 나 자신이 너무 밉고 성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휴 성준아.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너무 미안해. 아빠가 너무 많이 미안해. 어휴 내 새끼……."
나는 성준이를 오랜 시간 동안 꼭 안아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 성준이.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하게 태어나 더 아프고 더 소중한 내 아들 성준이. 이제 좀 알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초보이고 실수투성이인 서투른 아빠였다. 그 이후로 어딘가를 갈 때면 성준이가 신고 있는 신발 앞부분을 만져보며 성준이에게 물어본다.
"아야 해? 아야 해?"
"........."
물론 아무 반응이 없다. 반응이 없다는 것이 괜찮다는 신호다. 그러면 된 거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지금도 가슴이 너무 아프고 미안해진다. 성준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나는 성준이의 전신을 살펴보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성준이가 왜 우는지 아직도 나는 바로 알아낼 수 없다. 우리 성준이는 지금도 아가처럼 엄마와 아빠에게 "어바 어바(업어줘 업어줘)"하며 내 등 뒤로 와서 안긴다.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말들을 건넨다. "요즘 애는 어때. 많이 힘들지. 힘내라", "다 잘 될 거야. 파이팅이다." 그렇게 당연하듯이 위로의 말들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알까? 성준이의 맑고 순수한 눈망울의 미소와 웃음소리가 우리 가족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를…….
끝으로 장애 아이와 비장애 아이를 돌보고 있는 모든 가정의 앞날에 언제나 행복과 행운만이 함께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두서없이 서툴게 작성한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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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첫 번째는 보건복지부장관상 수상작인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다.
성준이가 왜 그럴까?
김효진
어느 휴일의 여름날이었다. 하루 전날 비가 와서 그랬는지 습도가 매우 높고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집에만 있기가 답답했고 에어컨 바람에 만성 비염이었던 나와 큰아들 성준이는 콧물과 기침에 고생이었다. 아이들 산책도 시킬 겸 장도 볼 겸 해서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려 했다. 밖을 막 나서려는데 큰 아들 성준이가 흐느끼며 서툴게 입을 열었다.
"시어시어...아냐...아냐.(싫어 싫어. 아니야 아니야.)"
성준이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 발화가 늦어져 아직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무언가 정말로 필요할 때만 입을 연다. 요즘 들어 밖을 나갈 때마다 칭얼거리고 떼를 쓰는 일이 잦았다. 밖이 너무 더우니까 나가기 싫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콧물과 기침에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반강제로 신발을 신겨 밖을 나갔다. 열 걸음 정도 걸었을까 성준이는 재빨리 내 앞으로 오더니 양팔을 크게 벌려 나에게 서툴게 말했다.
"아나 아나. (안아줘 안아줘)"
8살 치고는 큰 키에 무게가 있는 성준이를 안아주기에는 금속가공을 하며 무거운 쇳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을 반복하는 탓에 만성 허리 통증을 겪는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 돼! 오늘은 걸어가는 거야!"
"흐에에에엥. 흐아아앙."
그 말은 들은 성준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게 짜증이 났다. 이 습한 공기도 뜨거운 햇빛도 지금 이 상황들도 모든 게 싫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꾹 참고 아이의 손을 잡고 앞을 향해 걸었다. 성준이는 걸으면 걸을수록 더 크게 칭얼대며 울었다.
"자꾸 그러면 집에 가서 맴매할 거야!"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는지 성준이는 억지로 자기 입을 막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흐흐흐윽 흑"
그 우는소리가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이 기특한 부분도 있어 나도 더 이상 짜증을 내지 않고 조용히 걸었다. 동네 빵집에 들려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스텔라 빵을 사는 내내 성준이의 조용한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성준이도 나름에 불평불만을 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스읍! 그럼 안 돼!", "스읍! 조용!" 하며 화를 내었다. 아빠인 내가 그렇게 짜증 내고 화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준이는 나에게 다가와 팔을 벌려 또다시 말했다.
"아나 아나(안아줘. 안아줘)"
아이에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힘들었는지 계속 보채기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날씨가 더우니 힘들겠지. 우리 성준이는 몸은 커도 마음은 여전히 아기니까 떼를 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아……. 그래도 너무 힘들고 짜증 난다.' 나는 이해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가 해달라는 모든 걸 해줘서 버릇이 나빠졌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빠가 졌다."
나는 앞으로 안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 아이를 내 등 뒤로 업어 주었다. 나는 너무 덥고 힘든 나머지 길을 재촉해서 집으로 향했다. 5살 둘째 아이의 손을 잡고 앞서 걷던 아내도 더 이상 산책은 덥고 힘들었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동의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을 했다.
'집에 가서 성준이 이 녀석 혼을 좀 내야겠다. 아무리 장애가 있어도 자꾸 떼를 쓰네. 나쁜 습관 더 생기기 전에 버릇을 고쳐줘야겠어.'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나는 성준이부터 다그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성준이가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준이가 신발을 벗자 양쪽 양말 뒷부분이 빨개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성준이의 양말을 벗겼다. 양말을 벗기자 양쪽 뒤꿈치 부분에 물집이 생겨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고 엄지발가락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짧은 순간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왜 피가 나지? 전에는 별문제가 없었던 신발인데? 신발이 작아졌나? 아차! 신발 사준지가 오래됐구나!!!' 나는 재빨리 성준이가 신었던 신발을 성준이의 발에 대어 비교해보았다. 엄지발톱만큼이나 신발 크기가 작았다.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유난히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던 성준이가 몇 주 전부터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아진 신발 때문에 발이 아팠던 것이었다. 발이 아파서 계속 보챘던 성준이 마음도 모르고 계속 혼을 냈던 나 자신이 너무 밉고 성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휴 성준아.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너무 미안해. 아빠가 너무 많이 미안해. 어휴 내 새끼……."
나는 성준이를 오랜 시간 동안 꼭 안아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 성준이.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하게 태어나 더 아프고 더 소중한 내 아들 성준이. 이제 좀 알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초보이고 실수투성이인 서투른 아빠였다. 그 이후로 어딘가를 갈 때면 성준이가 신고 있는 신발 앞부분을 만져보며 성준이에게 물어본다.
"아야 해? 아야 해?"
"........."
물론 아무 반응이 없다. 반응이 없다는 것이 괜찮다는 신호다. 그러면 된 거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지금도 가슴이 너무 아프고 미안해진다. 성준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나는 성준이의 전신을 살펴보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성준이가 왜 우는지 아직도 나는 바로 알아낼 수 없다. 우리 성준이는 지금도 아가처럼 엄마와 아빠에게 "어바 어바(업어줘 업어줘)"하며 내 등 뒤로 와서 안긴다.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말들을 건넨다. "요즘 애는 어때. 많이 힘들지. 힘내라", "다 잘 될 거야. 파이팅이다." 그렇게 당연하듯이 위로의 말들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알까? 성준이의 맑고 순수한 눈망울의 미소와 웃음소리가 우리 가족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를…….
끝으로 장애 아이와 비장애 아이를 돌보고 있는 모든 가정의 앞날에 언제나 행복과 행운만이 함께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두서없이 서툴게 작성한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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